리바이스의 브랜드 스토리
국경과 세대를 초월하여 젊음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청바지는 오늘날 현존하는 최고의 의류로 손꼽히며 실패를 딛고 일어선 대표적인 발명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저에게 청바지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잡스입니다.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일 때 입고 나온 검정 터틀넥과 리바이스 청바지, 뉴밸런스 스니커즈를 신고 나왔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미국 실용주의의 상징으로 몸을 감싼 잡스는 아이폰처럼 쿨(cool)했습니다.
1980~90년대를 소비한 사람들에게 ‘국민 청바지’를 묻는다면 어떤 브랜드를 떠올릴까요?. 아마도 대부분은 ‘리바이스’를 고르지 않을까요? 한국에서 리바이스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아, 미국에서 리바이스가 여전히 잘나간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리바이스는 150년이 훌쩍 넘은 가성비 좋은 의류 브랜드로 미국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온 대중적인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에게는 맥도날드나 나이키, 코카콜라처럼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브랜드입니다.
리바이스의 시작
리바이스의 역사는 청바지를 최초로 발명한 리바이 스트라우스에 의해 1853년 설립한 Levi Strauss & Co.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1829~1902)는 독일 바이에른에서 건너온 유대인 출신 사업가입니다. 1847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와서 켄터키에 정착하였습니다. 이 당시는 소위 골드러시(Gold rush)리고 불리는 시기였고, 스트라우스는 천막을 팔아 부자가 될 꿈을 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합니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금광을 찾아 들어온 광부들로 북적거렸고, 스트라우스는 리바이 스트라우스 앤드 컴퍼니( Levi Strauss & Co)라는 가게를 차려 가족들과 함께 각종 직물과 텐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지만 점점 텐트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납품의 길이 막혀 위기의 순간을 맞게 됩니다.
천막천은 처리하기조차 힘든 골칫덩어리가 되었고 절망에 빠져있던 중, 스트라우스는 한 주점에서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광부들이 술을 마시며 찢어지고 헤진 바지를 꿰매며 질기지 않은 바지에 불평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번쩍하며 머리를 스친 생각이 바로 두꺼운 천막 원단으로 튼튼하고 질긴 바지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당장 몇 벌의 바지를 만들었고 질긴 천막 천으로 만든 푸른색 바지, 즉 최초의 청바지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바지를 파란색으로 만들었을까요? 청바지가 '청'바지가 된 데에는 역사적, 환경적, 경제적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당시 금을 캐러 다니는 광부들을 가장 괴롭히던 것은 뱀과 파충류의 습격이었고 파충류들이 파란색을 싫어한다는 말이 돌자 광부들은 데님(Denim)이라는 면 소재에 인디고(Indigo)라는 파란색 염료로 염색해서 입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만든 청바지는 인기를 끌게 되었고, 달리 제품명이 없었던 이 바지는 ‘리바이의 바지(Levi’s Pants)’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여기에서 ‘리바이스’라는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탄생하게 됩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LEVI’S)’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리바이스의 로고
1886년 만들어진 두 마리 말이 그려진 로고는 Levi’s® 제품의 튼튼한 속성을 상징합니다. 이 로고는 1886년 “XX” Jean의 가죽 패치에 처음 사용된 이래 지금까지 패치에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1967년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 랜도(Walter Landor & Associates)가 리바이스의 회사 마크인 붉은색 “배트윙”(batwing)을 디자인했습니다. 훗날 이 마크는 그 자체로 Levi’s®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랜도는 1941년 월터 랜도(Walter Landor)가 설립한 브랜드 디자인 컨설팅 회사로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현재 20개국에 26개의 오피스가 있는 세계적인 규모의 회사로 크게 CI와 BI 두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금호아시아나, LG, GS, KB, 신라호텔, 아모레퍼시픽, 삼성에버랜드 등을 디자인하였습니다. GS의 CI는 표절 시비에 걸리기도 했었죠.
리바이스를 성공시킨 또 한명의 조력자
스트라우스가 가장 먼저 내놓은 청바지에는 주머니 윗부분 양쪽 끝에 달린 구리색 단추가 없었습니다. 시대가 흘러 유행이 조금씩 변하더라도 이 단추는 대부분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요. 이 구리 단추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 단추는 재봉사 제이콥 데이비스가 처음으로 고안해 낸 것입니다. 금맥을 캐는 광부들이 주로 청바지를 많이 입었는데 주머니에 작업도구를 넣다보니 주머니가 쉽게 뜯어져 불만이 쌓였고, 광부의 아내였던 한 여성이 데이비스를 직접 찾아가 "주머니가 쉽게 헤지지 않는 청바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고심 끝에 데이비스는 주머니가 쉽게 뜯어지지 않게 구리 리벳(rivet)으로 고정하고, 이중 박음질 처리를 해 내구성을 높인 청바지 디자인을 완성했습니다. 리벳을 달아 물건들이 천의 표면과 직접 마찰하는 것을 줄였고, 그렇게 해서 천이 쉽게 닳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죠.
데이비스는 이 발명을 특허등록하고 싶었지만 수중에 그럴만한 돈이 없었기에 곧바로 직물 공급자인 스트라우스에게 달려가 단추 아이디어를 공개했고, 투자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스트라우스는 그 자리에서 성공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디어는 1893년 5월20일, 미국 특허청에 등록됐죠. 이후 스트라우스는 데이비스를 생산 관리자로 채용하였다고 합니다.
구리 단추가 박힌 청바지는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청바지 가격은 당시 한 벌당 1달러에 불과했지만, 스트라우스를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후 특허 독점 기간이 다가오자 슈트라우스는 차별화를 꾀합니다. 기존 리바이스 청바지 모델에 유명한 '501' 제품 번호를 부여해 디자인 분류를 시작했고, 바지에 벨트용 고리와 지퍼를 부착해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501 시리즈가 리바이스의 대표상품이 됩니다. 당시 그가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원단을 보관하던 창고번호 501에서 역사적인 아이템 ‘리바이스 501’이 유래했습니다.
청바지의 작은 주머니
청바지의 경우 대부분 앞쪽 주머니 안쪽에 더 작은 주머니가 있는 제품들이 대다수입니다. 사실 무언가를 넣기에도 작고, 넣는다 해도 빼기도 힘든 크기의 이 주머니는 왜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 주머니는 역사가 깊은데, 회중시계를 넣는 용도로 만들어진 워치포켓(watch pocket)입니다. 광부들이 시계를 바지주머니에 넣고 일을 하다보면 돌에 부딪히거나 긁히면서 시계가 파손되는 일이 자주 발생했는데, 리바이스에서 작은 추가 주머니를 만들어서 시계가 주머니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충격에 더 잘 견딜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시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시계를 따로 들고 다니지 않는데 이 주머니는 왜 있는 걸까요?
여기에 제작자인 ‘리바이스’측은 청바지의 시그니처화 되어있는 디자인이기 때문에 빼지 않았으며, USB, 콘돔, 동전, 라이터 등을 넣을 수 있어 그대로 두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이 주머니를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단순 ‘청바지 디자인’의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리바이스를 사랑한 사람들
1950년대는 산업화와 전쟁으로 인한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청바지가 직업과 성별을 초월한 유니섹스 패션으로 보편화되는 시기였습니다. 또한 세계1·2차 대전을 겪고 대량생산 시기를 거치면서 상징을 더한 대중적인 옷이 되었죠. 전쟁 이전 청바지가 '입을 것이 없어서 입는 옷', '작업에 편리해서 입는 옷'이었다면 전후에는 청바지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와 강인함'을 강조한 이미지가 부각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잃었던 자유와 전쟁을 이겨냈다는 강인한 이미지는 말론 브란도, 엘비스 프레슬리를 거쳐 제임스 딘에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서 반항적인 청춘을 연기했던 제임스 딘, 록큰롤의 황태자 엘비스 프레슬리가 청바지를 입고 나오자 청바지는 자유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이 기성세대들과 다르다는 점을 청바지 패션으로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리바이스의 위기와 재도약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세계 청바지 업계 부동의 1위를 지켰을 정도로 ‘리바이스’는 전세계인의 청바지였습니다. 그러나 ‘캘빈클라인’, ‘게스’ 등 경쟁자가 등장하며 전 세계 50%를 넘어서던 시장 점유율은 반토막이 났고 1985년에는 상장 폐지되기도 했었습니다. 통 넓은 전통 디자인만 고수하다보니 밀레니얼 세대에게 '엄마아빠 바지'로 불리는 수모도 겪었습니다. 젊음의 상징이었던 브랜드는 늙은 브랜드가 되었고, 당시 전문가들은 ‘리바이스’의 회생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비평하기도 했습니다.
회생 불가능할 것 같았던 ‘리바이스’는 2015년부터 반등했고 2019년에는 34년 만에 뉴욕증시에 귀환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리바이스’가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MZ세대와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무엇보다 MZ세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이즘’을 진화시켰다는 점입니다.
칩 버그 리바이스트라우스 CEO [이미지출처=블룸버그]
‘리바이스’ 브랜드의 부활의 과정을 보면, 당시 젊은 세대의 아이콘이 되었더라도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리바이스’의 부활을 이끈 칩 버그 CEO의 “150살 스타트업처럼 행동하자”라는 말처럼 브랜드라면 지속적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해야 하며 변화해야 합니다. MZ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며 MZ세대가 원하는 가치, ‘이즘’을 제품으로 마케팅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리바이스’처럼 늙었더라도 다시 젊어 질 수 있으며, MZ세대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리바이스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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