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의 탄생
나이키는 미국 스포츠 용품 브랜드로. 미국 오리건 대학교에서의 인연을 시작으로 운동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와 코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이 1964년에 공동 창업해 설립하였습니다. 본사는 미국 오리건 주 비버튼입니다.
나이키 공동창업자인 빌 바우어만(1911~1999)과 필 나이트(1938~ )는 각자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런닝화를 개발하겠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바우어만은 신발업체를 돌아다니며 제작을 모색했고, 나이트는 당시 제조업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본 신발업계로 눈을 돌렸습니다.
나이트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서 일본 신발제조업에 관한 논문을 쓴 뒤 직접 한 스포츠화 메이커를 접촉해 미국 판매권을 확보하는데, 그 회사가 바로 아식스의 전신인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였습니다. 그는 바우어만과 손잡고 1964년 오니츠카 타이거 운동화를 수입 판매하는 블루 리본 스포츠란 총판회사를 세우게 됩니다.
블루 리본 스포츠는 오니츠카와의 계약 만료를 앞둔 1971년 자체 생산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이키 브랜드네임과 로고를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이처럼 나이키는 잘 나가던 일본 운동화 메이커를 인큐베이터 삼아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초기 나이키 제품은 오니츠카와 다른 일본 업체에서 위탁 생산했었습니다. 나이키와 오니츠카는 디자인, 모델명을 놓고 소송을 벌이기도 했었죠.
나이키의 브랜드 _ 운명적인 브랜드 이름
새로운 브랜드 이름의 후보로는 '나이키(Nike)', '팔콘(Falcon)', '디멘션 식스(Dimension Six)' 이렇게 3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 결국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미국식 발음을 딴 '나이키(Nike)'가 선택되었던 것입니다.
'나이키'라는 브랜드 네임은 블루 리본 스포츠의 첫번째 정직원이자 육상선수 시절 필 나이트와 경쟁을 별였던 라이벌이자 동료였던 제프존슨(Jeff Johnson)이 새로운 브랜드 네임을 고민하던 중 자신의 꿈에 등장한 승리의 여신 니케를 창업주에게 추천하였고 '나이키'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필 나이트의 마음에 들지 않던 로고의 탄생
흔히 나이키하면 떠올리는 스우시(Swoosh) 로고는 1971년 포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이 필 나이트의 제의를 받고 단돈 35달러에 제작했습니다. 이 35달러도 처음부터 비용이 정해져있던 것이 아니라 당시 시급이 시간당 2달러여서 작업한 시간 이틀(17시간 30분)에 맞춰 35달러를 받았다고 합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현재 약 211달러 정도, 현재 환화 가치로 대략 25만원 정도입니다.
스우시(Swoosh, 휙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는 의미)
나이트는 데이비슨에게 로고를 의뢰할 때 로고가 단순하고 부드러우며 동적인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또한 아디다스의 로고와는 전혀 달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슨이 12가지 시안을 만들었고 그 중 한가지를 나이트와 경영진들에게 추천하자 나이트는 "별로지만 보면 볼수록 좋아질 것 같다. (I don't love it, but I think it will grow on me.)"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로고가 선정되고나서 데이비슨은 뭔가 아쉬운지 로고를 개선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이트는 마감 기한을 맞춰야해서 안된다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신발 한 켤레 값도 안 되는 35달러 짜리의 '나이키 로고'
스우시 로고는 1971년 상호를 나이키로 바꾸면서 공개되었습니다. 로고가 공개되고 난 후 나이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로고는 니케의 영혼과 날개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왼쪽으로 눕히면 나이키의 로고가 됩니다. 이 동상은 나이키의 로고를 만드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1983년 9월 나이키가 로고의 디자이너인 데이비슨에게 감사를 표하며 깜짝파티로 나이키 로고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보통 회사가 대성공을 이루고 나서 페이를 적게 받은 디자이너들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도의적으로 후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덕에 캐롤린 데이비슨은 백만장자는 아니어도 여유롭게 편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데이비슨은 한동안 나이키에서 일했으며 2000년 은퇴했습니다.
현재에 와선 이 로고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가 되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마이클 조던부터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세레나 윌리엄스 등 수많은 선수들이 나이키의 협찬을 받아 장비를 입고 홍보를 하면서 이 로고가 자연스레 노출이 많이 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비자들이 운동선수와 브랜드를 연결짓는다는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키 로고의 변천사
나이키 로고의 디자인
나이키의 로고는 언발란스한 비대칭 로고입니다. 비대칭이 주는 역동적임을 잘 표현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축구로 치면 슈팅할 때의 발의 궤적, 테니스로 치면 스윙의 궤적, 어떤 스포츠라도 어떤 역동적 궤적이 떠오르게 됩니다.
첫 번째 운동화
나이키의 가장 상징적인 신발 중 하나인 코르테즈
와플 굽는 기계에서 영감을 얻은 빌 바우어만은 고무 스파이크를 개발해 운동화 밑창으로 장착하기 시작했는데요, 기존 운동화에 비해 가벼우면서 지면과의 마찰력이 강하다는 특징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는 와플 제조기에 고무를 부어 고무 스파이크를 만드는 이 기술의 이름을 와플솔이라 정했고, 1972년 와플솔을 활용해 ‘코르테즈’라는 나이키의 첫 운동화를 시장에 선보이게 됩니다.
코로테즈 운동화 (출처: nike.com)
코르테즈 개발 이후, 빌 바우어만은 나이키의 첫 번째 운동화를 신고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를 찾았습니다. 빌 바우어만은 자신의 제자이자, 장거리 육상경기 7종목에서 미국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육상 선수 스티브 프리폰테(Steve Prefontaine)을 최초로 후원했습니다. 이후 나이키는 자사의 제품을 육상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후원했는데,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출전한 육상 선수 스티브 오벳(Steve Ovett)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983년 여자 마라톤 경기에 출전한 마라토너 조안 베노이트 사무엘슨(Joan Benoit Samuelson)도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세계 신기록을 세웁니다.
나이키 에어의 탄생
1970년대 말에 나이키는 미국 항공 우주국(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의 직원이었던 프랭크 루디(Frank Rudy)와 함께 단단한 주머니에 압축 공기를 주입해 일정한 압력을 가하면 자연스럽게 눌려지는 에어 쿠셔닝 기술(Air Cushioning Technology)을 개발했습니다. 1979년 나이키는 이 기술을 활용해 에어 쿠셔닝 기술이 적용된 테일윈드(Tailwind)를 출시했습니다.
나이키의 성장과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또 다른 두 명의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Tinker Hatfield)
빌 바우어만의 제자였던 팅커 햇필드가 장대높이뛰기 대신 전공을 건축으로 바꾸게 되면서 비로소 자기 안에 숨겨져 있던 드로잉 실력과 창의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스승이었던 빌 바우어만이 신발 회사를 창업하게 되자 홍보 리플렛에 멋진 신발 그림을 그려주는 식으로 돕습니다.
졸업 후 전시 인테리어 분야에서 일하던 중, 스승이 운영하는 신발 회사로부터 신발 디자인공모전 참가 초대장을 받게 됩니다. 신발 디자이너로는 초보자였던 그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프리젠테이션으로 입사 통보까지 받게 되고 초고속으로 승진해 수석 디자이너가 됩니다.
팅커 햇필드는 나이키 에어맥스1(air max1)과 에어조던(air jordan)시리즈를 만든 나이키 최고의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터 무어(Peter moore)
에어조던1과 유명한 '에어맨' 로고를 디자인한 디자이너 피터 무어. 그는 원래 나이키의 모델이자 파트너였던 마이클 조던을 아디다스로 영입하기 위해 몰래 나이키에 들어간 산업스파이 디자이너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도와는 달리 일을 너무 잘해서 대박이 난 것이라고.
피터 무어는 에어조던1, 에어맨이라는 초대박 아이템을 개발하고 아디다스로 이직한 후에는 누구나 아는 유명한 삼선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디자이너 한 명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죠.
에어조던3부터 에어조던 시리즈의 상징으로 활용되었던 에어맨은 원래는 피터 무어가 디자인했던 심볼 마크입니다. 에어맨의 자세는 곧 마이클 조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지만, 조던은 평상시 덩크슛할 때 그렇게 뛰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이클 조던의 슛 장면을 촬영하던 중, 조던이 장난으로 발레 동작을 흉내 내며 덩크슛을 했는데, 피터 무어가 이 장면을 포착해 로고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피터 무어가 산업 스파이라는 루머에도 그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디자인을 만든 디렉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며, 게임 제작사인 EA 부사장을 거쳐 최근에는 잉글랜드 축구팀 '리버풀 FC' 대표이사 자리까지 앉게됩니다.
팬데믹 이후 새로운 스포츠 미래를 제안한 나이키
나이키에서 슬로건을 빼면 시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우리가 흔히 나이키 하면 떠올리는 'Just Do It'은 1988년부터 시작되어 40년간 유지된 나이키의 슬로건입니다.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는 숨은 뜻을 가지기도 한 이 슬로건은 오랫동안 나이키의 정신적인 상징으로 떠오르며 나이키의 혁신적 가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나이키는 지난 2020년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슬로건에서 새로운 슬로건 'You can't stop us'을 내걸었습니다. 이와 함께 발표된 영상 또한 파격적인 효과를 냈는데 나이키가 들어간 세계 여러 나라 스포츠 영상들을 한 영상으로 어우른 데다 퀄리티까지 높아 호평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You can't stop us'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해 침체된 시대에 저항하는 이미지의 메시지로 우리의 열정은 식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듬해 2021년에 나이키는 다시 한번 새로운 슬로건을 내놓습니다. 바로 'Play New'입니다. 승리와 성공에만 집착하던 기존의 스포츠 관습에서 벗어나 스포츠를 즐기 수 있도록 만들자는 메시지로, 팬데믹 이후 새로운 스포츠 미래를 제안한 나이키는 폭력이 아닌 자발적인 즐거움을 회복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신발 유통업으로 시작하여 세계 업계 1위에 달성하기까지의 나이키 역사와 디자인 스토리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대중의 취향을 고려함과 동시에 브랜드 자체의 이미지를 꾸준히 구축하여 나이키는 현재에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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