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맥주의 브랜드스토리
맥주를 마시기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퇴근 후 갈증을 꾹 참았다가 한 숨에 마시는 깨끗하고 깔끔한 라거 맥주도 좋지만, 저는 거품과 풍미가 있는 스타우트 계열의 흑맥주도 좋아합니다. 흑맥주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죠. 바로 '기네스'인데요. 오늘은 기네스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깊고 풍부한 맥주 '기네스'
기네스는 짙고 풍부한 cream on top의 흑맥주 대표 브랜드입니다. 전세계적으로 흑맥주 지분만을 따진다면 기네스가 아마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듯 합니다. 기네스는 맥주의 본토인 독일맥주도 아니고,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맥주브랜드이지만 사실은 영국맥주도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립을 위해 영국과 전쟁을 치뤘던 아일랜드의 맥주입니다. 세계에서 하루 1,000만 잔이 소비되고 전세계 45개국에 공장이 있으며 150여 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기네스는 에일 계열의 스타우트에 속하는 맥주로 지금도 흑맥주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기네스는 묵직하게 씁쓸하면서도 달콤 쌉싸름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스팅한 보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색이 짙으며, 거품의 질감이 마치 크림같고, 홉맛이 뒷맛으로 살짝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네스의 깊은 풍미는 '3번 이상 마셔야 그 깊은 맛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네스의 역사
기네스의 역사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18세기 말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가 처음 맥주를 빚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서 기네스는 1759년에 더블린 세인트 부둣가의 다 쓰러져가는 버려진 양조장을 1년에 45파운드(한화 약 8만 원)씩 9천 년간 임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 뒤에 10여 년 간 동네 양조장으로 운영하다가 영국으로 수출을 시작하면서 인지도를 쌓고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양조장은 이후에 기네스에서 완전히 매입했으므로 9천년 임대 계약은 이젠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아서 기네스는 선대들의 맥주 레시피에 사업적 통찰력을 더해 브랜드를 키워나갔습니다. 기네스의 성공에는 물론 맥주 자체의 뛰어남도 중요하지만 창업자의 가문빨도 조금은 섞여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업자인 기네스 가문은 아일랜드 토박이가 아닌 아일랜드로 이주한 잉글랜드인의 후손이였기 때문에 사업에 있어서 영국 정부의 푸시를 꽤나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기네스 가문은 영국에서 작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백작 1명, 남작 1명, 준남작 1명으로 총 세번이나 말이죠. 즉 아일랜드인의 입장에서 기네스 가문은 한국으로 비유하면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일본인 귀족' 정도의 위치였던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들어와서 기네스는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술이자 아일랜드인들의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기네스가 처음부터 지금의 흑맥주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아서 기네스는 창업 후 10년간은 에일 맥주를 만들었고 1770년대에 들어 더블린에 포터주가 유행함에 따라 포터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799년부터는 완전히 포터주만 생산했습니다. 4년 후 맥주 공장이 본 궤도에 오를 때쯤 아서 기네스는 세상을 떠났고, 1821년 그의 아들 '아서 기네스 2세'가 ‘기네스 엑스트라 슈페리어 포터’를 만드는 양조 방법을 창안해냅니다. 이 맥주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기네스 흑맥주의 전신인 셈입니다.
기네스와 수학자
기네스는 맥주업계에서 최초로 수학자를 고용해 제품 관리를 시작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람은 1899년 기네스에 입사한 윌리엄 고셋으로, 고셋은 그때까지 효모를 넣는 양을 양조기술자들의 경험에만 의지해 맥주의 맛이 일정하지 않았던 것을 개선하고, 최고의 맛을 내는 효모 투입량을 알아내기 위한 수학적 기법들을 개발해냅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고셋의 방법을 적용하자마자 기네스 맥주의 맛은 엄청나게 향상되었고 매출도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고셋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수학의 기법을 논문의 형식으로 발표하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경쟁사들에게 이 비법이 알려지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만류했고, 어쩔 수 없이 고셋은 Student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회사의 허락을 받아 논문을 1908년 학계에 발표하게 됩니다. 그 후로도 그 필명으로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렇게 발표한 고셋의 논문들은 초기 통계학의 주요 저작들로 인정받게 됩니다. 훗날 기네스의 고위직까지 올라간 고셋이 스스로 밝히기 전까지 아무도 고셋과 Student 사이의 관계를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네스 로고의 비밀
맥주가 성공적으로 잘 팔리고 있는 무렵, 1862년이 되자 기네스는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하게 정착시킬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기네스는 심볼의 모티브로 아일랜드의 국가 상징인 켈틱 하프를 선택합니다. 아이리시 하프, 브라이언 보루 하프라고도 하는 켈틱 하프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데, 그 유래를 알려면 최소한 1,000년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아주 오래전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어 있던 아일랜드 전역을 통일한 브라이언 보루 대왕은 하프를 아주 좋아하고 연주 실력 또한 출중했다고 하는데요. 12세기 역사에 대한 현존하는 기록을 보면 십자군 전쟁 중에도 켈틱 하프를 연주했고, 또 하프를 연주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아일랜드 사람들은 하프에 대한 애정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기호로 하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죠. 켈틱 하프는 전통, 아일랜드, 즐거움을 뜻하는 거의 완벽한 상징이었기에 아서는 1876년에 하프를 그려 넣은 마크를 상표로 등록했습니다.
맥주회사 기네스는 왜 기네스 북을 만들게 된 걸까?
아서 기네스의 4대손이며 기네스사의 상무였던 휴 비버 경(Sir Hugh Beaver, 1890~1967)은 1951년 11월 10일 아일랜드 남동쪽 웩스포드(Wexford)에 위치한 슬레이니(Slaney) 강변에서 새 사냥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골든 플로버라는 물새가 워낙 빨라 단 한 마리도 사냥하지 못하고 동행했던 친구들에게는 망신만 당하게 되는데요. 그날 저녁 휴 비버 경은 골든 플로버가 유럽에서 가장 빠른 새인지 알아보기 위해 갖가지 참고 서적을 뒤적였으나 그 새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기존의 참고서적 중에서 골든 플로버의 자료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영국령 전역에서 이러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사업가인 휴 비버 경은 문득 이렇게 특이한 기록을 모아 놓은 책을 발행하면 훌륭한 사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1954년 9월 12일 휴 비버 경은 이미 기록광으로 널리 알려진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맥워터(McWhirter) 쌍둥이 형제를 초대하여 특이한 기록들을 모은 책의 편집을 의뢰합니다. 물새가 만들어 준 인연으로 맥워터 형제는 영국 재계의 실력자 비버 경과 세계 최고 기록들을 모은 책을 만들기로 결심하게 되는 것이죠. 편집 및 제작은 맥워터 형제가 맡고 책이름은 기네스 양조 회사의 이름을 따서 《기네스 북》으로 정합니다. 1년 동안의 기록 조사 과정을 거친 후 1955년 8월 마침내 세계 최초의 기네스 북이 탄생합니다. 198 페이지의 호화 양장본으로 영국 및 세계 최고 기록을 실었으며 사진과 그림을 곁들였습니다. 기네스 북 초판은 5만 부를 찍었으나, 한 달 만에 매진되었고 그해 베스트셀러 톱을 차지합니다. 최근까지도 영국 내 도서관에서 가장 잘 분실되는 책이 바로 기네스 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기네스 북은 1984년 5천만 부, 1994년 7천 5백만 부가 판매되었으며 발행 50주년이 되던 2004년에는 1억 부 판매를 돌파하였습니다. 2000년판부터 《기네스 월드 레코즈 Guinness World Records》라는 제명을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100개국 이상에서 30여 종의 언어로 번역·발행되고 있습니다.
기네스북의 판권을 소유한 기네스사는 1997년 그랜드메트로폴리탄(Grand Metropolitan)과 합병하여 디아지오(Diageo)로 출범하였습니다. 이후 기네스북은 2001년 굴레인엔터테인먼트(Gullane Entertainment), 2002년 HIT엔터테인먼트를 거쳐 2008년 짐패티슨그룹(Jim Pattison Group)에 매각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네스 기록을 총괄하는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고, 1996년 미국 사무소(뉴욕), 2010년 일본 사무소(도쿄), 2012년 중국 사무소(베이징)가 개설되었습니다. 이밖에 세계 곳곳에 대행사와 대리인을 두고 있으며, 한국은 2021년도부터 (주)하라커뮤니케이션즈에서 대행하고 있습니다.
기네스의 전성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기네스는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호주와 남아프리카까지 수출을 확장했습니다. 수출하는 나라 중에서는 적도를 두 번이나 건너야 닿을 수 있는 곳도 있어 기네스에서는 맥주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월드 트래블러’라는 직책까지 만들었습니다. 월드 트래블러는 기네스의 제품과 함께 항해하며 퀄리티, 가격, 에이전트 등은 물론 현지의 문화와 음주 관습까지 더블린 본사에 보고했습니다. 결국 기네스의 이름은 남극 탐험대의 기록부터 아시아 파미르 산맥의 상점 장부까지 다양한 현장에 등장하게 됩니다.
계열사를 분리하고 살균 지속 과정 연구 등 맥주의 과학 원리에 예산을 쏟아부은 시기, 기네스는 스타우트를 조금씩 넣은 미니어처 수천 병을 판매함으로써 높은 마케팅 효과를 얻었습니다. 휴 비버 경은 1954년 기네스는 메모를 넣은 기네스 유리병 수천 개를 대서양과 인도양, 태평양에 흘려보냈습니다. 병을 주운 사람들이 기네스 본사에 연락하면 소정의 기념품을 전달했는데, 병 안에는 “수천 킬로미터를 지나 당신에게 닿은 메시지. 기네스는 좋은 맥주입니다”라는 메모가 들어 있었습니다.
기네스는 짙은 색만큼 진한 맛과 성직자의 흰 옷깃을 떠오르게 만드는 순백의 거품이 특징입니다. 이 거품은 기네스 맛을 유지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하는데, 밀도 높은 거품이 맥주와 공기와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해 맥주를 다 마실 때까지 같은 맛을 유지하게 도와줍니다.
기네스는 캔과 병으로 마실때도 생맥주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위젯’을 개발했습니다. 반지름 3.175㎝의 플라스틱 공 모양의 위젯은 기네스 캔을 오픈하는 즉시 맥주 표면 위로 떠오르며 기네스 특유의 질소 거품을 만들어내 맥주의 부드러움과 풍미를 만들어내는 장치입니다. 기네스는 이 위젯을 무려 1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개발했지만 결국 남는 장사였습니다. 특허 로얄티로 이 개발비를 모두 회수했으니까 말이죠. 지금도 다른 많은 브랜드의 흑맥주가 이 위젯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네스를 집에서도 최상의 맛으로 마실 수 있게 해준 이 장치는 영국에서 인터넷보다 위대한 발명품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완벽한 한 잔의 기네스를 만들기 위해 따르는 방법이 따로 있습니다. 전용 잔에 두 번에 나눠 따르며, 따르기 시작해서 완벽한 한 잔이 완성되는 시간인 119.5초를 정확히 지켜야 하며, 크리미 헤드는 12~18㎜의 높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를 '퍼펙트 파인트'라고 부른다네요.
기네스는 이렇게 만들어진 맥주 맛과 상태를 관리하기 위해 각 국가마다 퀄리티 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기네스 생맥주를 판매하는 업장도 퀄리티팀의 품질 평가를 매월 받습니다. 평가는 전용 잔의 청결도, 맥주 제공 온도, 크리미 헤드 높이, 기구의 청결, 정확한 추출법 등 크게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서 진행한다고 합니다.
오늘은 퇴근 후 새우감바스에 기네스맥주 한 잔 어떠세요?
참고 : 기네스 공식웹사이트. issuewatch.tistory.com.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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